목줄2
지방대생이라고 억수로 괄시하네 씨버벌 여기 아니면 회사가 없나. 그나저나 밥값도 안주는 회사가 어딘노. 배고파 뒤지겠네."
주머니에는 딸랑 차비밖에는 없었다. 벌써 졸업 후 2년째 취직시험이다 면접이다 봤지만 그때마다 미역국이다. 이제 더 이상 집에서도 면목이 안 선다. 오늘 아침 집에다 큰 소리 뻥뻥 치고 나왔는데 걱정이 되었다.
"어 용수 아이가?"
"봉기 니 웬 양복이고? 취직했나? 야 축하한다."
"아이다. 면접보고 온다아이가. 니기미 이번에도 파이다."
"야야 자슥아 실망하지 마라. 아직 안늦데이."
"됐다 마. 술이나 한잔 사도."
"대낮부터 무슨...."
"빨리 가자 이 자슥은 무슨 말이 그리 많노?"
"야, 아부지 유품 중에서 이상한 일기책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기 뭔데? 어떤 내용인데?"
"그기말이다 뭐시 낚시이야긴 것 같던데 통 무슨 말인지...뽀인트니 살감시니 목줄이니.... 이기 무슨말이고?"
"임마 그것도 모르나, 다 낚시에 쓰이는 용어들 아이가. 그거 내주라, 내가 낚시를 안 좋아하나. 내가 술 한잔 찐하게 살께"
"이 새끼는 아부지 유품을 술 몇 잔에 팔아라꼬? 지랄병 안 하나."
"그라지 말고 내주라. 니 한테는 필요도 없다 아이가"
"안된다카이 이자슥 이거 완전 호로자슥 아이가? 니 같으면 그래 하것나 자슥아."
"그라모 카피하나 뜨자. 그래도 안되것나?"
"술함 무 보고."
봉기는 아무리 두 눈 부릅뜨고 읽고 또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듯 벌렁 뒤로 누워 천장을 쳐다보았다. 창 밖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에 벌써 가 을이 멀어져 가는 것 같아 괜히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올해도 취직 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니 집구석에 쳐 박혀있는 자신보다는, 처자식 다 버리고 낚시에 미쳐 갯바위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을 아버지가 한편으 로 부러웠다.
자신에게는 그러한 용기도 없었지만. 봉기는 <감성일기>를 읽으면서 정말 아버지가 용의주도한 사람이라는 것 을 깨달았다. 이 책에는 당신이 낚시를 하셨던 갯바위이름이며 포인트설명, 그림, 미끼 등 모든 사실들을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다.
사실 봉기는 할 일도 없고 밖에 나갈 형편도 안되고 해서 심심풀이로 이 책을 읽고 있었다. 또한 읽어도 용어자체가 낯설어 선뜻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다. 그렇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이 봉기자신이 생각했던 무절제하고 무책임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봉기는 이 책을 통해서 아버지의 당시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아버지가 낚시를 하시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얼마나 현실의 추악함에 상처를 받았는지 문장 중간 중간에 배여 있었다. 이제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그 당시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이런 일기 를 쓰고 있었을까?
"여보세요"
"내다. 니 지금 뭐 하노?"
"그냥, 배 깔고 있다. 와?"
"야 이번 주말에 낚시 함 가자."
"낚시는 무신 얼어죽을 낚시?"
"얌아, 집구석에 쳐 박혀 있느니 바닷바람이나 쐬면 안 좋나? 그라지 말고 가자. 이번에 거제도에 감싱이가 붙어서 난리 났단다."
"함 생각해보자. 나중에 전화 함 때릴게."
용수의 전화였다. 용수는 7년쯤 전부터 바다 낚시에 미쳐서 주말이면 거의 출조를 하고 있다. 주로 가까운 태종대나 가덕도로 낚시를 간다고 하였다. 별로 잘하는 낚시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 열의는 대단하였다.
그는 온천장에서 갈비 가게를 운영하는 어엿한 사장이다. 항상 밝게 살아가는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로서 봉기에게 있어서는 어릴 적부터 어울렸던 꼬치친구이다. 봉기에게는 언제나 관대한 형님과 같은 존재이지만 그의 자신감 있는 태도에 가끔씩 주눅이 들곤 해서 요즘은 별로 뜸한 관계였다. 자신의 처지를 그가 이해해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그는 고졸이었지만 가업으로 이어온 갈비 집을 물려받아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사장이 되었지만 봉기자신은 어엿한 지방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이렇듯 놀고만 있으니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상태였다.
고교시절에는 언제나 봉기가 우월한 위치에서 대했던 친구였는데 이제 그가 그렇게 커 보이는 것이었다. 가업을 이어받아 5년 사이
에 갈비 집을 운영하면서 확장개업을 두 번이나 할 정도로 사업수완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자신에게는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대했다.
봉기는 그가 학벌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대학을 다닐 때의 일이었지 지금은 사정이 그때와는 다르지 않는가.
지금은 용수의 그러한 태도가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자식 대학갈 때 억수로 난 체 하더니 지금 꼴 좋다' 라는 말이 그의 웃는 얼굴에는 숨어 있는 것만 같아서 봉기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값비싼 장비며, 낚시복, 승용차 등 이러한 것이 필수라고 떠 벌이고 있는 용수를 보면서 낚시는 여유 있는 자만의 놀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용수가 자신에게 낚시를 가자고 조르고 있으니 아마 <감성일기> 때문에 그럴 것이 틀림없었다.